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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이 ‘문제’인 진짜 이유(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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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1-15 00:00 조회3,0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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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을 ‘문제’로 보는 시각이 더 문제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출산은 전적으로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며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할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하여 “많이 낳아라, 적게 낳아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녀를 많이 낳으면 죄인이나 혹은 야만인 취급을 하면서 불임수술에 각종 혜택을 부여하지 않았던가.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저출산이나 고출산 어느 쪽이든 이런 것을 문제 삼아 여성의 몸을 적정 수준의 재생산에 봉사해야 하는 도구로 취급하는 모든 캠페인이나 정책들에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원칙적인 태도에서 조금 후퇴하여 개인행위의 집합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때에는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저출산이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아야 국가가 올바른 정책수단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우려할 만한 사회현상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자식 낳아 기르기에 녹록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현상을 이렇게 어떤 문제의 결과로 나타난 징후로만 해석한다면 저출산 자체를 문제 삼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저출산을 걱정하면서 대책을 논의하는가?

가족 가치의 붕괴나 인구 감소로 인한 국력 약화 때문에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가족의 가치’가 의미하는 바는 모든 개인과 가족에게 각기 매우 다른 것일뿐더러 다양한 가족형태야말로 개인의 결정권의 영역에 있는 문제이지 전체 사회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 인구의 감소도 그 자체로 우려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인구규모에서 바로 국력이 나오는 것이 아닐뿐더러 경쟁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의미에서 국력 운운이 국민의 삶의 질에 앞서는 개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인구구성의 세대간 불균형, 즉 인구의 고령화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인구구성의 세대간 불균형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며, 소득의 세대간 재분배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를 막론하고 개인의 복지와 삶의 질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인구의 고령화를 초래하는 원인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인구 고령화를 우려하는 것은 부양하는 세대와 부양받는 세대 간의 재분배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종합대책’에는 저출산이 왜 사회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다 보니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종합적으로 강구된다. 이제 와서 출산율을 조금 올리는 데 힘겹게 성공하더라도 고령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세대간 재분배의 문제는 여성과 건강한 노인들로 하여금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피부양자의 지위로 남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 잘 키우면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현실을 한참이나 호도하는 ‘선전’이다.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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