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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보건교사 투약 허용해야” vs “면책 조항 마련 급선무”

입력 : 2017-04-03 18:50:45 수정 : 2017-04-06 20: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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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투약 허용해야” vs “면책 조항 마련 급선무” / 소아당뇨 관련 학교보건법 개정 시급 / 타협점 찾더라도 보건교사 태부족… 전국 1만1733개교 중 31% 미배치 / 보건실에 글루카곤 상비 안돼 있어… 위급 상황 발생 땐 환자에 치명적 / 교육부 “각계 입장 달라 문제 복잡”… 환자 실태 파악에도 미적 ‘뒷짐’만
제1형 당뇨병(소아당뇨)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 화장실에 ‘숨어’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고, 위급상황 발생 시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인 보건교사는 의사의 처방이나 지시 없이 인슐린 주사 등 투약행위를 할 수 없다. 비의료인인 담임 교사도 마찬가지다. 소아당뇨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학교보건법에 보건교사의 투약 행위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건교사들은 가뜩이나 업무가 과중한 데다 투약행위로 예상치 못한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학교보건법 개정에 반대한다. 적절한 타협접을 찾아 법을 개정해도 전국 초·중·고교 3곳 중 1곳에는 보건교사가 없어 여전히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학생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교육당국은 “복잡한 문제”라며 별도의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있다.

◆학교보건법 개정 이미 한 차례 무산… “보완 후 재발의”

학교보건법 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국회다. 한국소아당뇨인협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학교보건법 개정을 위한 제9차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박석오 대한당뇨병학회 보험법제이사는 “무자격자가 의료행위를 못하게 하는 의료법 취지는 특정 직역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과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소아당뇨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각종 응급상황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보건교사나 이에 준하는 사람의 투약행위를 보장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보건교사회 총무이사인 김선아 서울 송정중 보건교사는 “인슐린이나 위급상황 시 사용하는 글루카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투약용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보건교사는 일방적으로 약물의 용량을 변경할 수 없어 위험하다”며 “학교보건법 개정안에 보건교사의 투약행위 결과에 면책 조항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교사는 일상적인 보건교육과 응급처치, 흡연·음주 예방, 비만 관리에 정신건강 관리까지 담당해 소아당뇨 학생을 전담하기 어렵다”며 “학생이 많은 학교에는 보건교사를 추가 투입하거나 특수질환 학생을 돕기 위한 보조인력을 새로 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양승조 의원(민주당)이 2015년 11월 현행 학교보건법 제11조에 ‘⑤학교의 장은 보건교사로 하여금 학생이 의사의 처방과 지시에 따른 투약행위를 할 때 이를 지원, 보조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학부모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가 보건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노웅래 의원은 학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재발의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로부터 보건교사의 인슐린 투약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놨다. 개정안에는 보건교사들의 투약행위에 대한 면책 조항을 마련하고, 투약도 위급상황으로 한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보건교사 없는 학교 30% 넘는데… ‘손 놓은’ 교육부

학교보건법이 개정돼도 넘을 산이 많다. 3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1만1733개 초·중·고교 중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는 31%인 3636개교다. 보건교사는 학생 수와 관계 없이 학교당 1명만 배치되기 때문에 학생이 많은 학교의 보건교사는 소아당뇨 학생을 도울 여력이 없다. 보건실이 교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소아당뇨 학생이 보건실을 찾기 힘들어 보건교사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초등 6학년 강진석(12·가명)군은 학교 보건교사의 배려로 보건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놓지만, 5층 교실에서 1층 보건실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어 한 번씩 화장실을 찾는다.

학교 보건실에 소아당뇨 학생의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약이 상비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신충호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당뇨 학생이 급작스러운 저혈당이나 고혈당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투약하는 글루카곤이 국내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수입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글루카곤을 수입해 학교 보건실에 비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관련 통계 확보 등 현황 파악은 물론 보건교사 확충이나 학교보건법 개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소아당뇨 학생 문제는 각계의 입장이 모두 달라 해결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며 “학교에 자녀의 질환을 알리는 부모도 있고 아닌 부모도 있어서 관련 통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도 문제의 심각성은 공유하고 있지만 초·중등교육에 관한 사무가 대부분 시·도교육감들에게 넘어가 적극 나서기 어렵다”며 “보건교사 확충은 국가공무원을 늘리는 문제라 교육부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책임감을 갖고 소아당뇨 학생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 환자들을 매일 보는 입장에서 이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건위원장은 “특수교육처럼 소아당뇨를 건강장애로 지정해 교육·치료·진학 등에 걸쳐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학교 현장에서도 당뇨병과 관련한 오해나 놀림이 없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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