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돼도 여전히 위협받는 학교보건

사회·학생 요구 높아지는데 홀로 수백·수천명 감당해야하는 보건교사들

기사승인 2019-05-1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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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고위험 학생들이 늘고 있다.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이 알려지고, 알레르기 쇼크로 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 등이 발생하며 국회는 2017년 11월 학교보건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땜질에 불과했다. 보건교사들은 여전히 밀려드는 학생과 행정업무에 시달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교육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보건교사들은 인력과 예산 없이 거창한 계획만 쏟아내는 정책이 학생건강을 오히려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 “보건교사도 화장실가고 점심 먹고 싶어요”

1200여명의 학생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서울 월촌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재희 보건교사는 14일, 제20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생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2년간 1200여명의 학생을 홀로 책임지며 연예인급 몸매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교육현장에서 느낀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학교의 보건안전은 언제고 문제가 터질 화약고와 같았다. 온 몸을 갈아 넣듯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은 안가면서도 야근은 밥 먹듯 진력을 쏟은 보건교사들의 희생에 겨우 유지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작은 구멍만 뚫려도 둑이 무너지듯 학생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커지는 것은 순식간일 정도다. 

실제 보건교사들의 생활은 심각했다. 하루에 1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의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요, 교육부에서 의무적으로 정한 보건교육에 학교보건계획 수립 등 각종 행정업무와 질병예방 및 지도, 여기에 교실의 환기·채광·조명·온도·습도 조절, 상하수도 및 화장실의 설치·관리, 오염·공기·석면·폐기물·소음·휘발성유기화합물·세균 등의 유지관리까지 신경써야한다.

오락가락하는 학교보건법과 하위 시행령 때문이다. 2016년 2월 제정된 교육환경보호법에 따라 보건교사의 직무 등의 근간이 되는 학교보건법의 수립목적에서 환경관리가 제외됐다. 하지만 학교보건법 4조에는 여전히 환경 및 식품위생에 관한 조문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정화조 관리에 미세먼지 등 공기 질과 시설관리까지 보건교사의 직무로 남았다.

더구나 2007년 12월 14일 이후 ‘학교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 및 교직원의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학교의사·학교약사 및 보건교사를 둔다’는 동법 15조가 ‘모든 학교에 제9조의2에 따른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둔다’로 개정되며 교직원의 보건관리를 업무에서 제외했지만 하위 시행령은 여전히 이를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보건교사의 직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학교보건법 시행령 23조가 그렇다. 문제는 시행령은 교직원의 보건관리 업무를 그대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포함해 보건교사의 직무를 17가지로 세분화해 나열하고 있다. 영양교사나 사서교사의 직무가 4줄, 상담교사의 직무는 규정되지 않은 것과도 비교된다.

이와 관련 김선아 보건교사회 부회장은 “현실을 반영하기는커녕 법에 맞지 않는 조항에 조문 간 일관성도 없다”면서 “시행령은 환경의 변화나 사회적 요구가 달라졌음에도 30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냉동 시행령이다. 보건교사도 학생들의 보건교육과 건강서비스에 집중하고 싶다. 물탱크 관리에 저수조 개선업무를 하느라 학생을 소홀히 해야 하냐”고 질타했다.

윤 선생도 “한 번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왔더니 1형 당뇨를 앓고 있던 아이가 보건실 앞에 주저 앉아있었다. 선생을 배려한다며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위험한 순간이었고 너무도 미안했다”면서 “1명만 더 있었어도 공백 없는 학교안전이 이뤄질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면서 경험에서 우러난 보건교사 확대배치와 업무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 학생 건강권 및 안전보장, 불가능한가?

학교보건의 더 큰 문제는 의료 기술과 장비의 발전으로 통학이 어려웠던 아이들도 정상에 가까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게 되며 보건교사에게 요구되는 의학적 수준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당장 학교에서의 안전사고가 2011년 8만6468건에서 2015년 12만건을 넘어섰다. 여기에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가정, 소년소녀가정, 다문화가족 등 가족형태의 다양화로 학교 내 건강관리의 필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법정감염병의 학교 내 전파는 늘고, 음주·비만·스트레스·성폭력에 당뇨병이나 알레르기,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가 증가하고 있다. 체액 등을 인공적으로 빨아내는 석션(suction)이나 소변을 인위적으로 배출하는 인공도뇨 등이 필요한 아이들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교육부를 비롯해 정부는 요보호 아동을 포함해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17년 일련의 문제를 해겨하겠다며 국무조정실이 나서 소아당뇨환아의 현황조사와 지원확대, 정보제공 및 인식개선을 포함해 14가지 조치를 약속했음에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관련 업무지침조차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 법률 간의 상충이나 학교보건법과 하위 시행령의 불일치, 보건교사의 과중한 직무개선을 위한 학교 내 업무조율 및 인력 확대·충원 또한 요원한 상황이다. 교육부 조명연 학생건강정책과장은 “교사 총 정원이 늘지 않으면서도 보건교사 정원은 이례적으로 크게 늘리는 등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면서 “아직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아울러 “국무조정실에서 만들기로 했던 매뉴얼도 아직 안 나가고 있지만 최종 확정단계다. 교육부에서 최종안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고, 이를 복지부에서 확정해 전해주면 발표할 예정이다. 복지부 회신에 따라 5월 안에도 발표가 가능하다”면서도 “아직 학부모와 의사, 보건교사 간의 완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인식개선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냉동 시행령이라는 등의 질타에 대해서도 “시행령 개정하려고 합의하고 국무회의 안건으로까지 올라갔지만 단체(공무원노조와 보건교사회 등 이해관계자) 간 싸움으로 불거져 내려갔다. 이후 선뜻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교육부 안에서도 (건강관련) 부서가 전체를 이해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며 “쉽지 않은 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어 “현재 보건교사에게 허용되는 의료행위가 의료법이 아닌 학교보건법과 시행령을 근거로 해 시행령에서 의료행위를 규정하지 않으면 보건교사가 반드시 간호사여야 하느냐는 논란이 또 불거질 수 있다”며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고 실무적으로 생각했던 것과 합의에 힘든 부분이 있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연구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답변에 한 보건교사는 “시끄럽고 복잡하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아무리 힘들어도 옳은 일,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면서 법령정비와 인력의 충원, 학생 수에 따른 적정인력배치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윤 선생도 “인공도뇨, 기관지 석션을 해주고 싶어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다른 응급상황에 대비해 아픈 아이를 학부모가 데려갈 때까지 기다리도록 두는 상황은 학생의 건강을 위험하게 할 뿐”이라며 시급한 개선을 거듭 주문했다.

법 개정돼도 여전히 위협받는 학교보건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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