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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요” ...보건교사의 외로운 성교육 줄타기(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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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장 작성일06-07-28 00:00 조회3,4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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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6년 07월 28일 (금)
쿠키뉴스 (종합면)
“지루해요” VS “변태같애”...보건교사의 외로운 성교육 줄타기

[쿠키 사회] 청소년 성고민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지만 학교 성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왜 그럴까. 학교에서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교사들은 현실의 벽이 높다고 말한다.

◇여기저기서 ‘시간 동냥’ 신세
보건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문제는 성교육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여기저기서 ‘시간 동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건 과목은 1963년 폐지됐기 때문에 재량활동 시간이나 체육 등 관련 과목 시간을 빌어 더부살이하는 형편이다.

전교조 보건위원회 김지학 위원장은 “성교육이 제자리 걸음만 하는 근본 원인은 성교육 시간 확보의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정규 시간이 없어 다른 교사가 출장가는 빈 시간 또는 관련 과목 시간을 활용하거나, 한 해 두어차례 강당에 모여 진행하는 이벤트성 수업이 전부라는 얘기다. 이런 산발적 수업으로는 체계적 성교육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보건교사 권모씨도 “학교측은 성교육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식”이라며 “나름대로 수업자료나 지도안을 만들어 수업해도 학교측의 격려나 관심이 없어 개인 의지로만 수업을 끌고나가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교육부가 정식 성교육 수업이 아닌 관련 교과 수업도 연간 성교육 시간에 포함시키도록 해 성교육이 연간 10시간 이상 이뤄지는 듯 포장해 온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체육·도덕·사회문화·가정과학·인간사회와 환경 등에 성 관련 내용이 기술돼 있다. 김 위원장은 “교과서에 수록된 성 관련 내용은 교과별로 50% 이상 중첩돼 있다”면서 “이런 내용이 실제 청소년 성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수준인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지루해요” VS “선생님 변태 같아요”... 성교육 수위 놓고 외로운 줄타기
현재 교육부는 성교육에 대한 뚜렷한 가이드 라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 교과서도 없어 담당교사가 나름의 기준으로 교육 내용을 마련한다. 교육부는 성교육 지도교사를 위한 홈페이지(http://www.edugender.or.kr)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 올려진 ‘함께 풀어가는 성이야기’는 2001년 교육부가 펴낸 ‘성교육 교사용 지도지침서’다. 유치원, 초등 저학년, 초등 고학년, 중학교,고등학교, 특수교육으로 나눠 성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청소년의 다양한 성고민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보건교사 권모씨는 “성교육 지침서는 현실을 반영하기엔 부족하다”면서 “그래서 대부분 스스로 자료를 마련하기 때문에 교사에 따라 성교육 내용이 중구난방”이라고 지적했다.

성교육 내용과 수위가 체계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생기는 고충도 크다. 고등학교 보건교사 윤모씨는 “생식기 기능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심심해하고, 조금만 개방적으로 수업하면 ‘변태선생’이라 부른다”며 “성교육은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수업”이라고 비유했다. 이 때문에 보건교사들은 체계적 교사연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각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보건교사 직무연수’는 한정된 인원만 수용하기 때문에 경력 순으로 신청자를 뽑는다. 서울의 경우 초등교사 50명, 중등교사 50명이 연간 한 차례 연수를 받는다. 이 밖에도 학교보건진흥원이나 여성부에서 진행하는 연수가 있지만 교사들이 쉽게 참여하긴 어렵다.

전교조 보건위원회와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건사연)가 5월 전국 초중고 보건교사 5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보건교육·보건관리 등 보건교사의 직무능력 신장을 위한 교육부(청)의 연수·세미나 개최 등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학기 중 보건교육·보건관리 등 직무와 관련된 연수·세미나·워크숍 등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냐는 질문에도 43%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건사연 우옥영 상임대표는 “교육대학원에 보건 관련 전공이 없어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 교사연수는 표면적인 내용에 그치기 십상”이라며 “보건 담당 장학사도 부족해 보건교육 질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학교 보건 혼자 관리하고, 각종 잡무는 산더미
학교당 한 명 뿐인 보건교사는 학생지도 외에도 교내외 환경관리를 책임진다. 교사 본연의 업무보다 잡무에 더 치중하게 된다는 의견도 많다. 경남의 보건교사 차모씨는 “화장실 관리·수질관리·저수조 청소·방역·소독·학교 공기질 관리·폐기물 관리 등 학교의 전반적 환경관리를 맡아야하는 실정이라 가끔은 내가 시설관리자인지 교사인지 헷갈린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끔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눈물이 나기도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보건교사 이모씨도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교사 확충이 절실하다”면서 “대규모 학급 학교에는 적어도 2명의 보건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교육부 통계를 보면 일반계 고등학교 1382곳 중 보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843곳으로 60% 수준이다. 중학교는 전국 2935곳에 1383명만 있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답은 보건교과 설치?
이런 상황이다보니 성교육 및 건강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보건과목을 정식 교과로 설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밀양에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1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 등 33명은 보건교과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학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한나라당이 앞장선데다 여당도 대통령 공약이라 반대하지 않아 법안 처리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개정안은 아직 국회 교육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보건과목 설치는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보건교사들은 수업시간 확보와 교과서 마련이 학교 보건 교육의 기본이라 주장하고, 체육 등 관련 교과 교사들과 사범대 교수 등은 현행 교육과정으로도 충분히 성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교육부에선 교과목 수와 학습량이 과다한 수준인데다 보건과목 독립으로 과목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지은 기자 her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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